17. 우상숭배

 

1.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욥31:26-28)

   왜냐하면 그 분만이

      ① 살아 계신 하나님이요

      ②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③ 섭리에 의하여 세계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며

      ④ 자기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2. 우상숭배는 이치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교도들의 섬기는 헛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3. 우상숭배는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섬기는 대상인 우상보다 훨씬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 우상 숭배의 기원 - 외경(지혜서 14장 12절-31절)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 시작될 때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 낼 생각을 하였다.

우상의 발견은 생명의 멸망을 가져왔다.

우상은 태초부터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있는 것도 아니다.

우상은 인간의 허영심 때문에 세상에 생기게 되었고 따라서 그것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없어지게 마련이다.

때아닌 때에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긴 아비는 온전한 그 자식의 상을 만들게 해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죽은 자에 불과했던 것을 신으로 공경하며 자기 일가 권속들에게 신비스러운 것으로서 제사를 드리도록 전한다.

그리고 그 불경스러운 관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굳어지고 법으로 보호를 받게 된다.

마침내는 군주들의 명령으로 그 조각된 우상들이 사람들의 예배를 받게 된다. 너무 멀리 살기 때문에 직접 경배 할 수 없는 군주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멀리서 그의 상을 만든다.

그들은 그들이 경배하는 왕의 초상을 만들어서 그 자리에 없는 자에게 마치 그가 보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열성을 다하여 아부한다.

우상을 만든 자의 야심은 그 왕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까지도 부추겨 우상을 숭배하도록 널리 선전한다.

그는 아마도 그 왕의 환심을 사려고 실제보다도 더 아름다운 초상을 만드는데 있는 재주를 다 부렸으리라.

그리고 민중은 그 아름다운 작품에 매혹되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던 자를 신으로 경배한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함정이 되어 사람들은 불행에 쫓기거나 왕권의 노예가 되어서 돌멩이나 나무 막대기에게 하나님만이 가지실 이름을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못 인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무지에서 오는 격렬한 싸움 속에 살면서 이와 같은 온갖 악을 평화라고 부른다.

자식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고 비밀 의식을 올리며 광적인 주연으로 이상한 예식을 거행한다.

그들은 생활이나 결혼의 순결성을 무시하고 속임수를 써서 서로 살육을 자행하거나 간통을 하여 서로에게 괴로움을 준다.

유혈과 살육과 도둑질과 사기로 모든 것은 뒤범벅이 되고 부패와 불신과 폭동과 위증이 난무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못 살게 굴고 좋은 제도는 파괴하고 어디가나 배은망덕이며 영혼들은 더럽혀지고 성행위가 난잡하고 결혼제도는 질서를 잃고 음행과 방탕히 성행한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은 모든 악의 시작이요 원인이요 마지막이다.

혹은 광적인 도취에 빠져서 거짓 예언을 하거나 혹은 불의한 생활을 하거나 거침없이 위증을 한다.

그들은 이 생명이 없는 우상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거짓 맹세를 해도 징벌을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지은 두 가지 죄에 대해서 정당한 벌이 내릴 것이다.

우상 숭배자들로서 하나님을 잘못 인식한 죄와 거룩한 것을 경멸하고 진리를 거슬러 정당하지 않게 맹세한 죄가 그것이다.

죄인들이 범죄 했을 때에 벌을 내리는 것은 사람들이 맹세할 때 이름을 부르는 우상들의 힘이 아니라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 우상 숭배 - 외경(지혜서 13장 10절-14장 11절)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들에게 희망을 거는 그들은 참으로 가련하다.

그들은 인간의 손이 만든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며 혹은 정교하게 다듬은 금, 은이나 동물들의 상이나 혹은 옛날에 어떤 사람이 조각해 놓은 쓸모 없는 돌멩이를 신이라고 숭배하였다.

목공을 생각해 보아라. 우선 일하기 쉬운 나무를 잘라 말끔히 껍질을 벗겨서 훌륭한 솜씨로 깎아낸 다음, 유용한 일용품을 만들어 낸다.

목수 일에서 남은 나무 부스러기는 밥을 짓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배불리 먹는다. 그리고도 옹이와 마디 따위는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남는다. 목수는 이것을 주워 끌로 새기며 여가를 즐긴다.

그리고 그것을 여가를 이용하여 기묘하게 깎아서 사람과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어떤 추한 동물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는 거기에 황토 칠을 하고 그 위에 붉은 색을 칠하여 모든 흠을 말끔히 없애 버린다. 그 다음 그것을 넣어둘 집을 만들어서 벽 속에 넣고 쇠못으로 고정시킨다.

이렇게 그는 그것이 떨어지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그 물건이 제 힘으로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상에 불과하므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이나 혼인이나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그에게 기도한다.

이렇게 생명도 없는 물건에 대고 중얼거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 약한 것에 대고 장수를 빌거나 이 무능한 것에 대고 도움을 청하거나 한 발짝도 옮겨 놓을 수 없는 이 물건에 대고 안전한 여행을 빈다.

손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에게 혹은 이득을, 혹은 사업을, 혹은 생업의 성공을 위하여 힘이 되어주길 빈다.

혹은 어떤 자는 배를 타고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려 하면서 자기가 탈 배보다도 더 약한 나무 조각에 대고 빈다.

배란, 이득을 추구하는 욕심이 생각해 내고, 조선공의 지혜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 배를 조종하는 것은 아버지이신 주님의 섭리이다.

주님은 바다에 길을 트시고 파도를 헤쳐서 안전한 항로를 마련해 주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도 구하실수 있음을 보여 주시고 전문적인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배를 타고 항해할 수 있도록 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 지혜의 업적이 허사로 돌아가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나뭇조각에 자기 모습을 내맡기고 뗏목을 타고 무사히 큰 바다를 건너간다.

그 옛날 오만한 거인들이 멸망하고 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은 뗏목 위에 희망을 걸고 피난을 하였다.

그 때에 그들은 주님의 손으로 인도되어 새로운 세대의 씨를 세상에 남겨 놓았다. 정의를 나타나게 한 그 나무는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물론 그것을 만든 자까지도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불경스러운 자와 그가 만든 불경스러운 물건을 똑같이 미워하시고 그 물건과 그것을 만든 자를 똑같이 벌하신다. 그래서 이교도들의 우상도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것들이 비록 하나님의 창조물이긴 하지만 가증스러운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며 사람의 마음을 홀리고 어리석은 자들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이 되었기 때문이다.


※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이사야 44:9-20)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보라 그 동류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괄리므로 심지어 주려서 기력이 진하며 물을 마시지 아니하여 곤비하며.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그는 흑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여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 하기도 하는구나.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다. - 외경(지혜서15:7-13)


  자, 도공을 보아라

  그는 부드러운 흙을 열심히 주물러서 우리가 살 수 있게 갖가지 그릇을 빚어낸다. 도공은 같은 진흙을 가지고 거룩하게 쓸 그릇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똑같은 방법으로 그와 반대되는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그릇이 각각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 하는 것은 도공이 결정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부질없는 수고를 하며 같은 진흙으로 헛된 신을 빚어낸다. 그런데 그 도공 자신이 바로 얼마 전에 흙으로부터 왔고 머지않아 다시 그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이다.

그 때에는 자기 일생에 대한 셈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머지않아 죽어야 한다는 것과 인생이 짧다는 것에 전연 개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금 세공인들이나 은 세공인들과 경쟁하며 청동 세공인을 흉내내고 쓸모 없는 물건들을 만들어 내고서 자랑스러워한다.

그의 마음은 마치 타고남은 재와 같고 그의 희망은 먼지보다 더 천하며 그의 생활은 진흙보다도 더 가치가 없다. 그는 자기를 만드시고 자기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시고 자기를 살게 하는 산 영혼을 넣어주신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는 일생을 일종의 유희로 생각하였고 인생을 돈벌이하는 장터로 생각하면서 “아무리 나쁜 수단을 써서라도 이익을 취하여야 한다”고 뇌까렸다. 같은 흙을 가지고 부서지는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조각상을 만들 수도 있는 그는 자기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